카이스트 출신 도연 스님 “10년 동안 전과·휴학·반수… 늦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입력 2017-12-18 17:10   수정 2017-12-27 17:57


[캠퍼스 잡앤조이=이도희 기자]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는 대학생을 위한 지도법사가 있다. 지도법사 스님은 절을 찾아온 20대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고 진로도 찾아준다. 

스님의 답변은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게임이 너무 좋아서 게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고민에 “공부도 하고 게임도 만들며 분산투자하라”는 다소 동네 형(?)같은 조언을 남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도법사 도연 스님 역시 이제 갓 서른이 조금 넘은 청년이자 05학번 선배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나 ‘물리학도’를 목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우면서 카이스트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12월 8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막 동국대에서 수업을 마치고 온 도연스님을 만났다. 사진=김기남 기자


집안은 물론 동네의 자랑거리였던 그는 그러나, 입학 1년 만에 돌연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갔다. 어린 10대 시절 내내 경쟁에 내던져지면서 ‘앞만 보고 내달리는’ 삶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수행과 탁발(걸식으로 의식(衣食)을 해결하는 방식)을 하며 스님으로 1년을 보낸 뒤, 대학에 돌아와서는 갑자기 문과로 전과를 했다. 한의대를 가겠다며 수능 시험도 봤다. 대학만 무려 10년을 다닌 그는 졸업 후 동국대 대학원에서 학부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인도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대학 동기 중엔 벌써 교수가 된 친구도 있어요. 다른 친구들도 번듯한 직장인이 돼서 여유롭게 살고 있죠. 출가 전 가장 걱정한 것 역시 ‘사회에서 도태되지는 않을까’였어요. 그런데 전 그동안 친구들이 보지 못한 세상을 만났어요. 정말 다양한 사람과 그들의 인생을 경험했죠. 10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던 거예요.”

도연 스님은 그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담아 올 4월, ‘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를 출간했다. 내년에는 독자를 10~30대로 특정해, 청년에게 명상과 자기계발의 효과를 소개하는 두 번째 책을 선보일 예정이다.

- 우선 가장 궁금하다. 왜 출가를 하게 됐나. 

“추상적이긴 해도 그냥 행복해지고 싶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꿈을 찾아야겠는데 그게 물리학자였다. 고등학교 때 김진명 작가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감명 깊게 읽었다. 고(故)이휘소 박사처럼 훌륭한 물리학자가 돼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꿈이 조금씩 가까워올 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기도 전에 쓰러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대학 생활이 고등학교의 연장선마냥 늘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하고 학점에 매달려야 하는 게 힘들었다. 어쩌면 경쟁에서 도태되면서 나 자신과 타협한 것일 수도 있다. 공부를 열심히 안 한 건 아니지만 그 과정이 너무 괴로웠다. 경쟁을 할 수는 있었지만 굳이 내가 왜 이렇게 꾸역꾸역 열심히 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카이스트에는 고수가 많다. 다들 잘하면서 좋아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나는 명함도 내밀 수 없었다. 그래서 출가하고 명상을 하면서 꿈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 꿈을 찾는 방법이 왜 하필 명상이었고 출가였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난 원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방학이면 수련회도 꼬박꼬박 참석했고 대학 입시 합격자 발표 전에는 금식기도도 했다. 방언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선배의 추천으로 한 명상센터를 갔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명상은 일상생활에서 굉장히 유용하다. 교회에서 찬양하고 성경 공부하던 것도 좋았지만 사회에 나오면 순간순간 잊곤 했다. 그런데 불교의 명상은 나의 가치관을 바꿔줬다. 일상생활에서도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고 딱 내가 찾던 것이었다. 교회나 학교를 아무리 열심히 다녀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는데 그게 명상으로 채워졌다. 그러다 수행하던 스님을 만나면서 완전히 출가를 결심하게 됐다.”




- 그렇게 찾은 꿈이 스님이었나.

“출가는 어찌 보면 꿈을 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그동안은 잘 하는 것만 좇아왔다. 원래 국사를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방송부 아나운서를 할 정도로 언어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냥 수학을 더 잘해서 이과를 선택했다. 그런데 대학은 달랐다.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하느냐가 평생의 진로를 좌우할 수도 있다. 그제야 좋아하는 걸 찾아보기로 했고 그게 종교와 철학이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닌 것도 같은 맥락이었던 것 같다. 10년간 절에서 몸소 수련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사례연구를 했다. 이제 이 사례를 귀납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 학문을 공부하고 있다.”




- 법명 ‘도연’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길 도(道)’에 ‘그러할 연(然)’이다. 은사스님인 봉은사 주지스님이 지어주셨다. 봉은사는 수도산 자락에 있다. 그 자연의 도를 깨달으라는 의미다. 보편적 진리를 깨우치라는 뜻이다. 

- 출가 전의 삶을 조금 더 들려 달라.

“카이스트 입학과 함께 전자공학을 선택해서 3학년 때까지 공부했다. 그러다 3학년 2학기 때 경영학과로 전과를 했고 그 결과 학교를 6년을 다녔다. 계절학기까지 포함하면 총 16학기를 들었다. 사실 전과를 하지 않았다면, 두 과목만 더 들으면 졸업이 가능했다. 그런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하기 싫었다. 수능을 두 번 봤다. 군 제대 후 한의대를 들어가기 위해 3월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반수’인 셈이다. 실패였다. 그런데 실패가 아니었다. 한의대는 문과였기에 경제, 경제지리, 사회문화까지 사회탐구를 공부했고 문·이과를 다 경험한 덕분에 경영학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공부를 매우 치열하게 했을 듯하다. 그렇기에 놓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늘 경쟁에 시달렸다. 아주 작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중학교를 남원 시내로 갔다. 20명 정도 되던 전교생이 한 번에 300명이 됐다. 입학해보니 다른 친구들은 다 선행학습을 마친 상태였다.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책 맨 앞장에 늘 ‘나는 노력파다’라고 적어두고 볼 때마다 ‘나는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최면을 걸었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다시 전주의 더 큰 고등학교를 갔고 역시 친구들을 따라잡기 위해 더 자신을 괴롭혀야 했다. 그리고 외고나 과학고 출신이 가득한 카이스트에 입학하면서 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것이다. 놓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의지가 더 컸다.”




- 출가 전 가장 마음에 걸린 게 무엇인가.

“부모님이다.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혹시 그동안 세상에서 도태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처음에는 법상종으로 출가해 학교 공부와의 병행이 가능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일주일의 절반은 서울에서 탁발하고 명상하느라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러면서 수행과 공부를 병행하는 게 맞는 것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곧 답을 얻었다. 내가 하고 싶은 ‘수행’을 하느라 성적이 안 나오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강연을 갔다가 한 참가자가 ‘게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데 학교공부를 같이 하기 힘들다’고 고민상담을 해왔다. ‘진짜 하고 싶다면 오래 걸리더라도 병행하라’고 조언해줬다. 스티브 잡스같은 사람은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기에 조금 더 안정적으로 분산투자하라는 의미다. 물론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사람보다는 성과가 낮을 수 있지만 멀리 보면 훨씬 안정적이면서도 이득이다. 요즘 ‘사십춘기, 오십춘기’라는 말이 나오는 건 그들이 잘하는 것을 꾸역꾸역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10년, 20년 뒤의 밑그림을 그려보자. 그때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 현재 봉은사에서 대학생 지도법사를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절을 찾는 대학생을 가르치고,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대학생 법회를 이끈다. 주로 인근의 강남권 학생들이 많이 찾는데 성적과 취업 관련 고민이 가장 많다. 특징적인 건,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잘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는 것이다. 비교적 진로를 일찍 찾은 셈인데 스스로는 모르지만 제 3자는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해도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최대한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방향을 조금만 틀어주는 식이다.”






- 올 중순 ‘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특히 인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요새 혼밥, 혼술이 대세인데, 인연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인연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내가 출가를 한 것도 수행하던 스님을 만난 인연 덕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주변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스쳐가는 모든 사람은 같은 시간,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땅에서 태어난 인연으로 만났다. 이건 굉장한 일이다. 내가 인생의 주인공 같아도 주변의 인연을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다.”

- 좋은 인연을 찾는 방법이 있나.

“감이다. 그 감은 경험으로 계발할 수 있다. 책을 읽고 간접적으로 느껴도 좋다. 또 다른 좋은 방법이 명상이다. 명상은 ‘내 안의 도서관’이다. 무의식의 정보를 경험할 수 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려 준다.”




-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명상법이 있나.

“요가다. 요가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효과가 큰 명상법이다. 더 나아가면 호흡법을 배워보라. 복식호흡은 명상 뿐 아니라 대학생들 발표나 면접 때도 도움이 된다.” 




- 출가 후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끝이 곧 시작이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끝점에서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옛말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늘 잘 나가면 변화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러나 위기는 새로운 무언가를 할 동기부여가 된다. 포기하고 싶을 때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 새해를 맞아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인 대학생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난 대학을 10년 만에 졸업했다. 이미 친한 동기 중 2명은 대학교수가 됐다. 물론 누군가는 빠르게 달려가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는 늦더라도 많이 경험하면서 남과 다른 길을 걸어가도 되지 않을까. 편입도, 재수, 대학원, 전과 모두 그중 하나다. 공부를 잘 하려면 공부를 좋아해야 한다. 좋아하는 공부를 찾으려면 많이 경험해야 한다. 대학을 여러 군데 다녀도 좋고 인턴이나 교환학생을 해도 좋다. 예전에 故신영복 교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20대 때 문사철(문학·역사·철학책) 600을 하라는 조언이 크게 와 닿았다. 역사공부가 어렵다면 역사소설을 읽거나 사극을 봐도 된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꼭 실천하길 바란다.”

tuxi0123@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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